조선시대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 옆에 있었던 언덕으로 개화기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곳이다.
한강으로 돌출한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한 데서 잠두봉·용두봉·가을두라고도 불렀다.
양화나루터는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도로 가는 중요한 길이었으며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또한 전국에서 세곡이 조운선에 실려 올라오는 항구로서 농산물의 유통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잠두봉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한강을 거슬러 온 프랑스함대에 대적하기 위해 방어기지로 사용되었다.
이곳이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병인양요 이후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움과 동시에 1만여 명의 가톨릭(천주교) 신자들을 붙잡아 이곳에서 목을 잘라 처형한 데서 연유한다.
한국가톨릭교에서는 순교 100주년째인 1966년, 이곳에 순교기념관을 건립하여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순교정신을 현양하였다.
기념관은 순교자기념성당, 박물관, 순교성인 28위의 유해를 안치한 경당(지하묘소) 등 셋으로 구분되어 있다.
순교자 기념공원으로 꾸민 앞마당에는 김대건·남종삼의 동상, 순교자상, 일본에서 순교한 오타줄리아의 묘 등이 있다.